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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은 아들을 이렇게 가르쳤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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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지성
등록일
2022-11-30
조회수
1049
다산 정약용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학자로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 현재의 남양주시에서 출생하여 지금은 해당 지역에 ‘다산신도시’라는 명칭으로도 유명하다. 정약용은 28세에 문과에 급제,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2019년 결혼 후 불과 지난 2022년 6월까지만 해도 수원에서 거주하며 바로 집 근처에 있던 수원 화성에 많이 놀러간 기억이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이 가볼 것을 추천하기도 했던 화성은 정말 뛰어난 미적, 실용적 건축기술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정약용은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탄압,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에서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를 하며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정약용이 유배지 강진으로 떠나던 1801년, 그의 큰아들 학연은 19세였고 둘째 아들 학유는 16세였으며 두 아들에게 가르칠 것이 많았다. ‘다산은 아들을 이렇게 가르쳤다’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 가훈을 아버지의 목소리를 담아 공부하는 법, 돈을 벌고 쓰는 법, 사람을 사귀는 법, 삶을 살아가는 법 등 총 4개의 주제로 나눠 현재에 맞는 해설을 붙여 편역한 책이다.
우선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며 “군자는 의복과 갓을 바르게 하고, 시선을 위엄 있게 하고, 장중하고 고요하고 단정하게 앉아 마치 흙으로 만든 인형처럼 위엄이 있고, 말과 글은 진실하고 엄격하고 바르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한 후에야 대중들 앞에서 권위가 생겨 대중을 납득시킬 수 있고 명성이 오래가고 멀리 퍼지는 것이다.”
그리고 “책을 쓰기 전에 먼저 인격을 갖추어라.” 잠시 공부를 미루어 두고 몸가짐과 행동하는 법을 먼저 익히라고 주문하며 그런 후에 자신의 역량을 잘 헤아려 분수에 맞는 책을 쓰면 많은 사람이 사랑해준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의 인품에 따라 평가도 달라진다는 뜻으로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데에 매우 공감하게 되었다.
가장 크게 공감한 내용은 “절대로 서울을 벗어나 살지마라”였다. 정약용은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자식들에게 거주지를 서울로 정해서 사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비록 박해를 받아 폐족이 되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서울에 살며 문화적 소양을 높게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지금 내가 강남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잘하고 있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많이 들었는데 이 책을 보며 직장 위치 하나만큼은 잘 잡았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도 있지 않았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