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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 이원익 대감의 삶

  • 작성자

    전경희

    등록일

    2020-06-07

    조회수

    443

 이원익은 태종 대왕의 4세손으로 태어난 자타가 공인하는 왕족의 일원이다. 어려서부터 조선왕국의 수도에서 역사를 몸소 겪으며 사람의 업에는 악업과 선업이 있고 반드시 각각의 업에 따른 결과가 있다는 성현들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옷을 벗은 알몸이 똑같듯이 누구나 한꺼풀만 벗기면 평상심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웃음소리, 울음소리, 앓는소리가 비슷하듯 누구나 겉치레를 그만두면 금방 제본심, 제양심, 제평상심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원익이 황해 도사로 일할 때 백성의 삶과 직결되는 조세는 지방 관리들의 근무자세에따라 백성의 사는 모습이 천양지차 일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지방 관아에서 형률을 어떻게 적용하고 예절과 교육에대한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따라 지방 목민 행정의 건강도, 성숙도가 결정되기 마련이라고 엄격한 시험기준을 적용했고, 최선을 다해 조세를 비롯한 갖가지 부담을 합리적으로 고치고 다듬어 백성의 사정을 잘 헤아린다는 말을 들었다.

 평안도 안주에서 누에치기로 백성에게 배를 곯지 않게 해주며 비단옷도 입게 해주었다. 그러면서 물 묻은 뽕잎을 그대로 주면 누에가 설사하게 된다며 한잎 한잎 정성스레 닦아주며 작은 벌레 한마리도 살폈다.

 전란 후 민심을 수습하는 일에도 인구조사를 철저히하여 조세든 군역이든 현실에 맞게 시행해야 한다고 했고, 관청에서는 곡식을 저장해 두었다가 백성이 필요로 할 때 빌려주었다가 추수하여 되 갚는 방식이 가장 합리적이라며 환곡 만은 늘려야한다고 주장했다.

 또 왜적의 침입 후에는 백성이 스스로 먹고 살 길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하였고, 나이든 사람의 경험이 중요하다며 자문하는게 좋다고 하였다. 궂은 일, 고된 일을 앞장서서 한 관료들을 추천하여 공로에 맞게 표창해주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7년 대 전란에 다들 몸과 마음이 많이들 다치고 지쳐 임금이나 관료들이나 하나같이 활력을 많이 잃은 상태였다. 거기에다 눈만 떳다 하면 당파 싸움이라 이제는 제발 물러나서 쉬고 싶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이원익은 전쟁이 끝났으니 내 소임도 이제 끝났다고 여겼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할퀴고 찢겨 험해지고만 심성을 생각해서 한시 바삐 물러나고 싶었다.

 왜국은 내전에서 무섭게 부풀어오른 흉포한 인심을 조선 침략으로 해결하려 했는데 당쟁에 맛들인 조선 왕국의 관료들은 7년 왜란을 온몸으로 치르며 시시각각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른 사나운 인심을 동료 과료들을 향해 쏟아내고 있었다.

 이원익 또한 여러번 탄핵을 받았지만 임금은 4도 제찰사로 보내어 부를 개설하게 했다. 임금에게 역참을 보강하고 늘리며 육군을 토병제로 바꾸어야 한다고 건의해 성 밖에 집과 토지를 주어 살게 하되, 위급할때에는 성에 들어와 지키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건의하자 임금도 합당하다며 활과 환도를 하사했다.

 청백리를 뽑아 올리라는 임금의 지시가 있을때에도 가난과 고생과 고통이 분명한데 태연하게 잘 이겨냈고, 털끝만큼도 사사로운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이원익을 평가했다.

 기유년을 맞자마자 유경영의 예를 생각하며 붕당의 폐단을 고쳐야 임금의 위업을 제대로 쌓을 수 있다고 하고 사람 됨됨이를 평소의 언행에서 다 드러나게 되니, 첫째는 임금이 선별에 엄격해야 하고, 둘째는 당파짓는 이가 오히려 해를 입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심적인 관교, 선비들이 한결같이 붕당이 망국으로 통하는 지름길이라고 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임금과 관료들이 특히 경계해야 할 제 1의 적이 바로 붕당이라고 꼬집었다.

 이원익은 임금이 원칙을 지키지 않으니 상벌이 혼동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임금이 먼저 사사로운 뜻을 벗어나 원칙을 지키면 형별과 표창이 바로 설 것이고 모든게 임금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임금이 잘못하면 모든게 허사가 된다고 하였다.

 정거정의 일조 편법은 정확한 토지 측량으로 파악한 자료를 근거로 삼아 토지를 근거로하여 은으로만 세금을 내게 한 일이 국고를 단 시일내에 채우고 문란한 국정을 바로잡는 단초가 되었다. 사후 1년 뒤에 처벌을 받고 멸문지화를 당하긴 했지만 그의 개혁 정치는 실로 두마리를 잡는 고마운 수단이 되었다.

 난이 있고 역모가 있고 이러한 일들 모두가 인과응보인 셈이기도 하다. 기울 때가 되어서 기울고, 일어설 때가 되어서 일어선다는 대 자연의 법칙에 견주어보면 아무리 오리무중 같아도 그 나름의 질서가 엄연히 있는 것이다.

 성석린은 나무 궤짝을 벗 삼아 아예 영화라는 이름까지 지어주고 맹사성은 여러 종류의 악기들을 손수 만들어 틈만나면 연주 하였다. 87세를 살며 충효의 모범을 보였던 황희를 떠올리면서 그런 세분을 한데 모아 놓은듯 하다며 임금은 이원익을 칭찬하지만 칭찬이 지나치시니 듣기 거북하고 송구스럽다며 감히 그 세분과 견주겠나하며 한가지 견줘질만한게 있다면 고작 분에 넘치는 나이 뿐이라며 겸손을 떤다.

 성현이 말한 온고지신이 바로 앞 일에 대비하는 지혜의 근본이다. 이미 여러 차례 겪고도 그 속에서 앞 일을 대비하는 지혜를 얻지 못하였다면 나아짐이 없을 것이다.

 왜란, 호란을 겪으면서도 정직한 공직 생활로 임금과 관료들 그리고 백성으로부터 귀감이 되고 칭송을 들은 이원익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나라를위한 도리를 가르쳤다. 백성이 있고 나라가 있다는 진리를 마음에 새겨두라고 당부하며 조선왕국의 청백리들이 어찌 살았는지 잊어서는 안된다고 재차 일러두는 이원익의 간절함이 자손에게도 그대로 전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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